(이 글은 99%의 진심과 1%의 클로드 보정으로 작성했다.)
마시멜로 스파게티 탑을 아시나요?
스파게티 면 20개, 테이프, 실, 그리고 마시멜로 하나로 18분 안에 가장 높은 탑을 쌓는 게임이다. 꼭대기에는 반드시 마시멜로를 올려야 한다. TED 강연으로도 알려진 이 챌린지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팀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언제 만들기 시작하는지, 실패했을 때 얼마나 빨리 고치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MBA 학생들보다 유치원생들이 더 높은 탑을 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계획을 세우고 역할을 나누는 데 시간을 많이 쓴다. 아이들은 일단 만들고, 무너지면 다시 고친다.
2023년 하반기부터 2025년까지 리더 역할을 맡았던 시간을 돌아보면, 대학교 때 만들었던 마시멜로 탑이 떠오른다. 당시에도 어떻게든 높이 올리려고 스파게티 면을 덧대기만 했다. 구조가 불안정한데도 계속 위로만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협업을 했다기보다는 혼자 바쁘게 움직였던 쪽에 가까웠다.
리더로 지낸 시간도 비슷했다. 나는 원래 완벽주의가 있고, 사회불안도 꽤 높은 편이다. 모르는 용어가 나와도 쉽게 모른다고 말하지 못했다.
주니어 때는 회의에서 모르는 말이 나오면 몰래 검색했다. 그러다 그 방식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어느 순간부터는 질문을 더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충분히 자리 잡기 전에 리더 역할을 맡게 됐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상태였다. 그래도 회의에 들어가면 아는 척을 하게 됐다. 지금 와서 보면 일을 줄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좋은 방식은 아니었다.
매니징을 시작한 뒤에는 질문을 삼키는 일이 더 많아졌다. 모르는 것을 바로 확인하지 못하니 불안은 커졌고, 불안이 커질수록 말은 많아졌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무엇을 말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퇴근 후에는 그날 했던 말과 하지 못한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다 환경이 조금 바뀌었다. Cursor와 Claude를 자주 쓰게 되면서, 그동안 사람에게 쉽게 묻지 못했던 질문을 AI에게는 계속 던질 수 있었다. 아주 기본적인 것도 물어봤다. 질문을 많이 하다 보니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조금씩 보였다.
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사람에게는 묻지 못하면서 AI에게는 편하게 물었다는 점이다. 팀원들에게 질문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 했던 시간도 아쉽다. 내가 모든 영역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무리였다. 팀원들은 각자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했고, 내가 배우면 좋았을 관점도 많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걸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리더 역할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질문의 중요성이었다. 질문하지 않으면 모르는 상태가 오래 유지된다. 모르는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 불안이 커진다. 불안이 커지면 더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 흐름이 꽤 오래 반복됐다.
물론 불안이 높은 성향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자기 확신이 부족한 사람에게 질문은 생각보다 큰 행동이다. 그래도 지난 몇 년 동안 그 불안을 조금씩 다루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완전히 없애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관리해야 할 신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단단한 기둥을 먼저 세우고 싶다. 바람이 불어도 바로 무너지지 않게 말이다. 상황에서 조금 떨어져 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위로만 올리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신입으로 입사하고 처음 썼던 회고에도 비슷한 내용을 적었던 것 같다. 그때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완벽주의를 버리고 무서워하지 말자”에 가까운 말을 썼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비슷한 결론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원칙이 필요하다. 다짐만으로는 잘 바뀌지 않는다. 반복할 수 있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첫 번째 원칙은 이렇게 정해보려고 한다.
걱정은 아끼고, 질문은 더 많이.
조금 더 작게 쪼개면 이런 행동이 된다.
-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회의가 끝난 뒤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묻기
- 이해한 척하고 넘어가기 전에, 내가 이해한 내용을 한 문장으로 되말해보기
- 불안해서 말을 많이 하고 싶어질수록, 먼저 질문 하나를 던지기
- 혼자 정답을 만들기 전에, 동료의 관점을 먼저 빌려보기
불안을 다루면서 알게 된 것은, 생각만으로는 잘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상황이 오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습관처럼 꺼낼 수 있는 작은 행동을 만들어두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지금 보내는 시간은 한 발치 떨어져서 전체적인 설계를 다시 보는 시간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도, 이런 정리는 필요하다. 다음에는 더 높은 탑을 급하게 올리기보다, 덜 흔들리는 기둥을 먼저 세워보고 싶다.
